전 수상이었으며 현재도 정치계에 거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리에 전 수상의 집에 2인조 테러리스트가 침입한다. 이리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테러리스트들은 딱히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채, 한 명은 할복 자살하고 한 명은 동료의 할복을 도운 다음 자신도 자살한다. 그 후 이리에는 곧바로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만다. 이 사건의 진상 규명과 실험을 위해 테러리스트 소년의 머리는 최첨단 과학기술에 의해 생명을 유지하게 되고, 이리에의 손녀인 마이는 소년의 머리를 돌보게 된다. 마이는 머리에 '포포이' 란 이름을 붙이고, 말을 걸거나, 음악을 들려 주는 등 그를 돌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마이와 포포이 사이에는 불가사의한 교류가 시작되는데...
쿠라하시 유미코의 '케이코 씨' 시리즈 중 다섯 번째 작품으로 케이코 씨의 연인인 이리에의 손녀 마이와 머리만의 존재인 '포포이' 가 등장한다. 할복자살한 미소년, 그리고 그 머리. 살로메와 미시마 유키오를 연상시키는 테이스트가 등장하며, 작가 자신도 그것을 의식했는지 군데군데에서 위의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그리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지는 않다.
읽으면서 가장 매혹적이었던 것은, 그로테스크하고 퇴폐적이지만 한없이 눈부시고 순수해 보이기도 하는, 마이와 포포이의 교류이다. 포포이를 위해 음악을 틀어 주거나 책을 읽어 주기도 하지만, 일부러 그의 앞에서 옷을 갈아 입는 등, 마이는 지극히 정중히, 하지만 호기심에 가득 찬 태도로 그를 대한다. 마치 여름방학 숙제로 구근을 키우며 즐거워하는 소녀처럼.
이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존재와 크라나흐의 유디트를 닮은 소녀의, 에로틱하면서도 죽음의 향기가 나는 짧은 공동생활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넌 어느 정도 날 사랑하고 있는 걸까?"
"내 빈약한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언제나 그랬듯, 자극적인 소재에 비해 이야기는 담담하게 끝을 맺는다. 몸을 잃고 머리만 남은 포포이는 처음에는 몸 따위 없어도 살 수 있다는 듯 제법 그럴듯하게 살아가지만, 결국 '과거' 를 잃은 그의 기억은 점점 쇠퇴해가며 급속히 노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마이는 포포이를 해방시켜 주기로 결심한다. 찰나같은 여름이 지나고, 소녀는 이제는 필요 없어진 구근을 땅에 묻으며 눈물 한 방울을 흘린다. 그 마지막 장면이 소름끼치게 아름다웠다.
"해방의 시간이 왔어."
그렇게 말하며 생존장치의 전원을 끈 나는 머리를 고정하고 있던 틀을 벗겨내고 욕실에서 가져온 장밋빛 플라스틱 통에 뽑아낸 머리를 옮겨담았다. 마치 수많은 뿌리를 늘어뜨린 채 썩어가는 구근 같은 모습이었다.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숨을 멈춘 채, 나는 머리가 담긴 통을 그대로 큰 가방에 넣어 안뜰로 나왔다.
점찍어 놓았던 무화과 나무 아래에, 삽으로 부드러운 흙을 퍼내고 머리를 묻는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머리는 아직 눈을 뜨고 있었다. 내게는 살로메처럼 요한의 머리에 키스하는 악취미는 없다. 머리가 축축한 땅 속에서 기분 좋게 잠든 채 겨울을 보내고, 내년 봄에 싹을 틔워 아름다운 꽃을 피우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머리를 위해 기도하는 정도로 끝내자. 가을의 기척을 실은 차가운 아침 바람이 불어와 눈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느낀 순간 어딘가 나사가 풀린 듯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르다가 이마에 철학자 같은 주름을 지은 채 다가왔다. 여기를 파헤치면 안 된다고 잘 타일러야지. 그리고 포포이의 묘비를 세워줘야겠다. 포포이의 묘비. 법명은 타나토스. 향년 0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