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을 잃고 혼자서 조용하게 살아가고 있던 미치루의 집에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아키히로가 숨어든다.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침묵을 공유하는 두 사람의 기묘한 동거생활은 그들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데...
빌려온 오츠이치의 책 그 두번째. 조그만 정물화같은 작품. 참 좋은 기분으로 읽었다. 작가 특유의 정갈한 묘사와 신비한 분위기가 흐르는 전반에 이어, 후반에는 의외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것들과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기에 이 작품은 조금 특별한 무언가가 된 것 같다.
미치루도 아키히로도, 혼자만의 세계를 원하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삶은 편하다.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한 삶이다. 하지만 그 세계에서 벗어나 누군가와 닿으며 살아가는 것은 더욱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미치루와 아키히로는 서로로 인해 그런 삶을 맞이한 듯 하다. 하지만 작가가 그런 삶을 강요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그는 이런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고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난 그런 오츠이치가 참 좋다.
조금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때면, 거실의 소파에 누워서 창 밖을 바라본다. 그러면 오후의 햇빛이 희미하게 스며 들어와 무척이나 편안한 기분이 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용기를 가지게 하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내일은 가슴을 펴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츠이치의 글을 읽고 있으면 항상 그런 오후의 햇빛 속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언젠가 경험했던 것 같은 편안함, 그런 기시감을 더듬으면서 읽어 나가는 그의 글은 무척이나 다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