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의 번화가에서 차례로 엽기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가 나타난다. 범인의 이름은 가모우 미노루. 그는 여성이 살해당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영원한 사랑의 완성이라고 생각하고 반복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범인인 미노루, 아들이 살인마라고 의심하며 불안에 떠는 마사코, 자신에게 호의를 가진 여성이 살해당한 후 범인을 쫓는 전직 경찰 히구치. 각기 다른 세 사람의 시점에서 무참한 살인극이 펼쳐진다.
꽤나 그로테스크하다는 이야기를 먼저 들어서인지, 손에 들어오고 한참이 지나서야 읽을 결심이 선 작품이었다. 소문대로 잔인하기는 했지만, 작품에서 받은 충격은 결코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야기는 세 사람의 시점에서 번갈아가며 서술된다. 같은 시간대의 미노루와 마사코. 히구치. 언뜻 정교하게 보이지만 독자를 착각 속으로 유도하는 치밀한 구성. 호흡도 적당하고 적당히 긴박감도 있어서 글 자체도 대단히 쉽게 읽혀지는 편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현대 가족의 붕괴라는 테마를 바탕으로 의미심장한 트릭이 완벽하게 기능하고 있다. 각 장의 서두에 제시되는 그리스의 천지창조 신화와, 진실이 밝혀지는 라스트 신에서의 충격적인 한 마디는 아들의 부재, 남편의 부재, 아버지의 부재를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그리고 트릭. 이 작품에서는 의도적으로 독자를 속이려고 한다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존재하는 사실만을 제시하지만 (물론 명확히 제시해 주지 않는 사실도 있다) 독자는 이러한 세계를 잘못 인식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세계를 재구성한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로 독자는 진실의 세계를 인식하는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구성, 테마, 트릭의 완벽한 조화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읽은 작품 중에서도 손꼽힐 만한 수작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미스테리의) 재독을 꺼리는 나에게 몇 번이나 읽게 만들었던 책은 이 작품이 거의 처음이었으니까.
이 블로그를 만들게 된 주요 목적의 하나인, 아비코씨 작품 감상을 시리즈별로 하나씩은 올리게 되어서 만족스러운 기분; 이제 최신작 하나만...;